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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우리가 잃고 있는 소중한 것들 /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이름 관리자 이메일  bbanlee@kfcc.or.kr
작성일 2024-07-02 조회수 94
파일첨부  colum_202407.pdf
사물에는 양면이 있기 마련이다.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 또한 부정적 측면 외에 긍정적 측면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후자보다 전자가 훨씬 많다는 점이다. 중처법의 폐해는 고려치 않고 중처법으로 인해 안전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크게 높아진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이러한 관점은 순기능만 보고 부작용과 기회비용은 생각하지 않는 유아적 사고라고 할 수 있다. 

중처법으로 사회 전체가 처벌문제에 매몰되면서 역량을 강화하고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진지한 노력은 되레 약화되고 있다. 공포분위기에 기생하는 자들이 안전을 오염시키기까지 하고 있다. 아이러니한 건 공공기관 출신들이 이에 앞장서고 있다는 점이다.  

세월호 침몰사고(2014.4.16), 이천 물류창고 화재사고(2020.4.29)와 같은 대형참사 등으로 안전에 대해 크게 높아진 국민적 관심을 정부의 전문성과 진정성 부족으로 우리 사회의 안전을 선진화하는 절호의 기회로 활용하지 못하고 엄벌 위주의 미봉적이고 보여주기 대책으로 일관했다는 점에서 많은 반성이 필요하다. 중처법 제정이 아닌 보편적이고 비용효과적인 대안을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었는데도, 어떠한 방안이 가장 바람직했을지에 대한 성찰적 질문과 올바른 방안 마련을 위한 진지한 노력과 실력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중처법에는 우리 사회에서 중대재해가 다발하는 원인을 차분하게 진단하고 이에 대한 실효적인 대책을 깊이 있게 고민한 흔적이 없다. 중처법이 재해예방에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는 것은 태생적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비교법적으로도 중처법과 같은 입법례를 찾아볼 수 없기도 하다.

재해예방의 선진성은 엄벌 정도가 아니라 예방 시스템과 인프라를 얼마나 충실하게 갖췄냐에 달려 있다. 그런데 이것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전문성을 요하기 때문에, 쇼맨십이 강한 정부일수록 엄벌주의에 기대는 경향이 강하다. 정부가 이 유혹으로부터 하루빨리 벗어나야 하는 이유이다.
중처법의 폐해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중처법으로 인해 안전에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중처법의 태생적 한계에 따른 것도 있지만 정부와 엉터리 전문가들이 조장하는 측면도 크다  

첫째, 행정자원을 처벌에 과도하게 집중시켜 취약부문에 대한 예방관리를 소홀히 하게 하는 등 행정자원의 배분을 왜곡하고 있다. 그리고 법리적 타당성을 묻지 않고 ‘닥치고 수사’를 하는 관계로 불기소 또는 무죄가 많이 나올 경우 행정자원의 큰 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  

둘째, 발등에 떨어진 형사처벌 문제에 대응하는 데 급급하게 하고 실질적인 안전을 위한 기본적이고 체계적인 활동은 한가한 일로 치부되어 관심에서 멀어지게 하고 있다. 그 결과, 사회 전체적으로 고비용 저효과의 안전이 조장되고 안전에 대한 냉소주의와 수동화가 만연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창의적이고 진정성 있는 안전관리가 이루어질 수 없다. 

셋째, 법체계·내용의 불명확성으로 인해 자의적 법집행·해석이 남발되고 있다. 문제 있는 법은 정비 전에라도 그 폐해를 줄이기 위해 가급적 그 적용범위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실체법적으로 법개념을 제한적으로 해석하거나, 절차법적으로 엄격한 증거의 요구 등 절차규칙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법집행기관과 법원은 대부분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넷째, 중대재해 발생 기업은 억지로라도 범죄자로 만들어 내겠다는 수사편의주의가 횡행하면서 종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처벌받아 온 중소기업(사장) 중심으로 엄벌에 대한 규범적 근거 없이 ‘묻지마’ 처벌이 이뤄지고 있다. 

다섯째, 법집행기관에서 안전을 처벌 위주로 바라보는 결과, 작업을 발주 또는 도급하는 측에서 의무주체로 오인될 것을 우려하여 안전에 대한 적극적인 관여나 활동(자율안전)이 되레 위축되고 있다.  

여섯째, 법의 모호성과 엄벌에 편승해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재해예방에 대한 사명감 없이 안전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삼는 자들로 넘쳐나고 있다. 엉터리 컨설팅과 심사 짬짜미가 사이비 학자들에게까지 성행하고 있다. 법률시장은 대형로펌에 일거리가 몰리면서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고 있다. 

일곱째, 예측가능성과 이행가능성 부족으로 실질적 안전보다는 문서작성 위주의 형식적 대응을 조장하고 있다. 재해예방을 위해 정작 해야 할 일을 하기보다는 치장하고 겉멋 부리는 데 시간과 정력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여덟째, 처벌문제에 집중할 뿐 사고원인 조사·규명에 대한 관심은 뒷전으로 밀리고, 중대재해 발생이 가십거리로 전락되고 있다. 재해예방 역량을 위한 귀중한 자산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의 기본법인 산업안전보건법의 실효성을 높이는 일에는 관심이 약화되고 그 중요성이 등한시되고 있다. 

중처법이 기치로 내거는 중대재해 감소를 달성하기 위해선 엄벌주의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기업의 안전역량을 강화하고 기업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안전관리를 해나가도록 재해예방 시스템 개선과 인프라 구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중처법을 더 늦기 전에 산업안전보건법으로 일원화하는 방식으로 폐지하거나 대대적으로 정비해야 한다. 중처법은 정의롭다는 미몽에서 하루빨리 깨어나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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