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시행 3년째다. 2021년 한 해에만 2,080명의 안타까운 생명이 산업재해로 스러져간 참혹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영국의 ‘기업과실치사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 2007)’을 참고하여 제정한 법이다. 중대재해(사망자 1명 이상 혹은 중상자 3명 이상)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영국 법에는 없는 경영자 처벌 조항을 포함했다. 재해 척결 의지의 표명이다. 2024년부터는 적용 범위가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5인 이상으로 확대되어 중소기업까지 포괄한다.
작금의 현실은 암울하다. 지난 8월 28일 국회입법조사처가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재해자 수는 2021년 12만 2,713명에서 2024년 14만 2,771명으로 증가했다. 올해 상반기 잠정 통계도 증가 추세다. 사망자 수 또한 2022년 2,223명에서 2023년 2,016명으로 줄었다가 2024년 다시 2,098명으로 늘었다. 법 시행 이전과 차이가 없다. 유예기간이던 2021년(2,080명)과 비교하면 오히려 늘었다. 입법조사처는 “재해자는 증가했고 사망자 수의 유의미한 감소가 없었다”며 입법 효과를 제한적으로 평가했다. 산재 감소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여전히 건설 현장은 사고의 온상이다. 최근에도 일부 건설사와 공기업의 작업 현장에서 사망사고가 잇따랐다. 2024년 5월부터 7월까지 국토교통부가 실시한 우기 대비 안전 점검 결과, 2,015개 현장에서 5,372건이 지적됐다. 절반 이상(3,157건)이 추락방지·가설 구조물 설치 미흡 등 기본 수칙 위반이었다. 건설업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왜 강력한 처벌에도 사고는 줄지 않는가. ‘규제의 역설(Regulatory Paradox)’이다. 처벌 위주 규제가 기업을 ‘서류상 안전(Paper Safety)’에만 매달리게 한다. 현장 위험은 방치된다. 자율적 안전 문화를 마비시킨다. 맹자는 “덕만으로 정치를 할 수 없고, 법만으로는 스스로 시행되지 않는다(徒善不足以爲政 徒法不能以自行)”라고 말했다. 공자는 《논어》에서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過猶不及)”고 피력했다. 법이 지나치게 한쪽으로 기울면 본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는 경구다.
건설산업의 구조적 요인이 법 집행 효과를 제한한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책임을 희석한다. 안전 비용은 가장 약한 고리에서 축소된다.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가 다수인 현장에서 전문 교육과 안전 투자가 미흡하다. 안전은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 달성될 수 없다. 산업 생태계 전반의 협력이 절실하다. 해외 주요국 사례가 이를 뒷받침한다.
영국은 「기업과실치사법(제1조)」에서 “조직의 활동 관리 방식이 사망을 초래하고, 그것이 관련 주의 의무의 중대한 위반에 해당할 경우, 조직은 유죄가 된다”고 규정한다. 기업에 형사책임을 지운다. 독일은 「산업안전법(제3조1항)」에서 “고용주는 근로자 안전과 건강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할 의무가 있다”고 선언한다. 고용주 책임을 명시한 이 조항은 독일의 노사 공동 결정 제도와 결합하여 산업안전 정책 수립·이행 과정에 근로자 대표가 참여토록 한다. 산업안전을 공동 결정 영역에 포함했다. 일본은 「노동안전위생법」을 통해 사전 안전교육을 의무화하고, 안전관리자를 지정한다. 법적 규제와 더불어 근로자 참여와 교육을 통해 산재율을 지속적으로 낮췄다. 단순 처벌 위주가 아니다. 조직적 책임과 자율 관리, 그리고 참여·협력으로 안전 문화를 형성한다.
우리나라 중대재해처벌법은 명칭부터 처벌 일변도다. “두려움만으로 사람의 본성을 바꾸지 못한다”는 마키아벨리(군주론 17장)의 지적처럼, 처벌 중심의 법으로는 내적 변화를 이루기 어렵다. 과도한 처벌에 의존한 제도는 지속 가능할 수 없다. 인력과 예산이 부족한 중소기업에게 규제 준수는 불가능에 가깝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서 대상 기업의 43.3%가 중대재해처벌법을 ‘가장 큰 규제 부담’으로 꼽았다.
법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처벌 중심에서 예방 중심으로, 형식적 의무 이행에서 실질적 안전 문화 조성으로 전환해야 한다. 안전교육 확대와 AI 기반 위험 모니터링 장비 도입 지원, 중소기업 안전장비 보조금 지급, 그리고 무사고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과 인증 제도 같은 구체적 정책이 절실하다. 하청업체를 포함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야 한다. 신고 포상제와 익명 제보 시스템으로 근로자 참여를 유도하는 것도 실효적 대안이다.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은 “천지지대덕왈생(天地之大德曰生)”을 말한다. 하늘과 땅의 큰 덕은 생명을 살리는 것이라고 한다. 법의 목적도 마찬가지다. 처벌보다 생명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다. 규제과 자율, 처벌과 인센티브, 그리고 기업과 근로자 협력이 균형을 이룰 때 안전이 구현된다. 규제의 역설을 극복하기 위해 업계와 정부가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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