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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경제정의와 건설산업 /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원장
이름 관리자 이메일  bbanlee@kfcc.or.kr
작성일 2019-10-01 조회수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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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계는 유독 정의(正義)’라는 단어 앞에서 기를 못 펴는 것 같다. 건설현장의 부실사고나 부정부패 사례가 자주 언급되어서일까. ‘경제정의를 간판으로 내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같은 시민단체의 공격에 대해서도 무기력하다. 정부기관에서 정상적인 영업활동이나 정당한 경영행위조차 불법행위로 처벌해도, 중소기업이나 약자보호 같은 아름다운 명분을 내걸고 불합리하고 불필요하면서도 과도한 규제와 간섭을 해도 감히 나서서 항의하지 못한다. ‘평등, 공정, 정의를 내세운 문재인정부에서 건설업계의 목소리는 한층 더 낮아진 것 같다.

최근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사태를 계기로 문재인정부의 정의가 무슨 의미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정치적 논쟁은 제외하자. 대신 역사적·경제사적으로 정의라는 단어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부터 보자.

자유주의 경제사상가인 하이에크에 따르면, 정의라는 단어는 사회적이란 수식어로 인해 다른 의미가 되었다고 한다. 1870년대에 등장한 사회적 정의는 원래 빈곤한 사람들의 후생증진에 더 힘써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러다 점차 그 의미는 사회가 모든 구성원들의 물질적 지위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쪽으로 확장되었다. 이후에는 개개인들이 각자가 받아야 할 정당한 몫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까지 포함하게 되었다. 이같은 의미의 사회적 정의는 사실상 분배적 정의를 의미하고, ‘경제적 정의와 같은 말이다.

그런데 경제적 정의나 사회적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나서서 그런 결과가 창출될 수 있도록 과정을 조정해야 한다. 누군가사회가 아니라 결국은 국가로 귀착된다. 사회는 생각하고 행동하고 평가하는 주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불가피하게 국가권력이 그런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주의자들은 정부가 시장경제에 깊숙이 개입해야 하고, 규제나 입법을 통해서 정의롭다고 생각되는 결과를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이 현실화되면, 사회주의는 궁극적으로 노예의 길을 닦게 될 것이라고 하이에크는 경고했다.

시장경제는 참여자간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내는 자생적 질서다. 시장경제에서 배분과정은 인간의 의도나 기획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사회주의자들은 음모론을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시장경제에서 발생한 불평등은 누군가가 음모를 꾸며 기획하고 의도한 결과라는 식이다. 하지만 하이에크가 지적했듯이, 역사적으로 시장경제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이유는 진화론적 선택의 결과.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데 시장경제가 큰 기여를 했기 때문에 진화론적 선택의 결과로 시장경제를 선택한 집단이 더 큰 번영을 누리게 된 것이다.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이나 붕괴도 같은 이유다. 시장경제 국가의 음모 때문에 망한 것이 아니라 생산성과 효율성이 결여된 체제였기 때문에 망한 것이다. 그런데도 사회주의자들은 시장경제와 같은 자생적 질서를 계획경제나 명령경제와 같은 인위적 질서로 바꾸자는 시도를 거듭해왔다. 하이에크는 사회주의가 기본적으로 자원의 생산이나 이용에 관한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나 사실적으로도 약속한 바를 실현할 수 없다고 보았다. 실제로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은 국민들에게 자신들이 약속했던 것을 주지 못했다. 그런데도 사회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바라는 변혁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같은 생각이야말로 치명적 자만이라고 꼬집었다.

사회주의자들이 변혁을 추구할 때 마다 정당성의 근거로 내세웠던 것이 경제정의요 사회정의였다. 시장경제에서 발생한 불평등이란 결과를 국가권력으로 과정을 통제하여 분배적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주의 국가에서 실제로 나타났던 현상은 잘해봐야 자비로운 독재정치였고, 대개는 권력을 장악한 극소수를 제외한 모든 국민들이 빈곤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결과를 놓고 볼 때, 사회주의자가 말하는 사회적 정의는 실제로는 ()사회적정의일 뿐이다. 이처럼 정의라는 단어는 경제적이나 사회적이라는 수식어로 인해 오염된 단어(poisoned language)’가 되었다고 하이에크는 한탄했다.

경제정의란 이름으로 건설산업에 가해지는 비판 중에는 옳은 것도 있고, 터무니없는 것도 많다. 건설산업의 불합리한 관행 중에는 위법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문제없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도 있다. 하지만 그런 불합리한 관행은 합법적 불의에 해당한다. ‘도덕의 최소한이라는 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해서 불합리한 관행을 정의로운 것으로 포장할 수 없다. 또한 건설산업에서의 경제활동도 시장경제의 틀 속에서 참여자들간의 상호작용에 따라 자생적 질서가 이루어지고 있다. 경제정의를 앞세운 정부의 과도한 규제와 간섭이 자생적 질서를 망가뜨리면서 더 심각한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하기도 한다. 분양가 상한제 도입을 둘러싼 최근의 부동산시장 상황이 그렇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아무튼 건설산업도 시장경제의 한 부문이다. 시장경제의 자생적 질서가 건설산업에서 구현되는 과정이나 결과도 정의로울 수 있다. 경제정의나 사회정의라는 단어에 건설업계가 지나치게 위축될 이유는 없다. 불합리한 관행을 제거하고, 불필요한 규제의 혁파를 통해 시장질서를 바로 세우는 것이 경제정의를 확립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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