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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건설의 품격을 높여주는 신비로운 퍼플(Purple)의 향기 / 이현수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명예교수
이름 관리자 이메일  bbanlee@kfcc.or.kr
작성일 2021-05-31 조회수 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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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색깔로 전달되는 이미지와 메시지는 매우 직설적이고 강렬하다. 색깔 중에서도 원색은 더욱 강한 인상을 준다. 아주 어렸을 적에는 순진하게도 북한사람들은 모두 빨간 얼굴을 하고 있다고 믿었던 기억이 난다. 붉은 색은 2002년 월드컵 축구경기가 한국에서 개최되었을 때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그 진가를 발휘했다. 경기장은 물론 서울 한복판 시청 앞 광장을 비롯하여 전국의 모든 마당을 가득 메운 붉은 악마들에게서 우리는 기쁨과 희열 그리고 희망을 읽었다. 그 해 여름 내내 그리고 그 후 몇 년 동안 축구경기가 있을 때 마다 온 국민들의 드레스 코드는 붉은 바탕에 "Be the Reds!"라는 하얀색의 멋진 글자가 새겨진 티셔츠로 통일되었다.

가끔 건설산업의 미래비전에 대해 강연할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새로운 시장의 발굴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 프랑스 인시드(Insead) 대학의 김위찬 교수는 블루오션 전략이라는 저서를 통해 새로운 시장을 하나의 색깔로 완벽하게 표현하였다. 이 책의 요지는 레드오션에서 소모적인 경쟁을 하기 보다는 경쟁이 없이 무한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블루오션을 발굴하기 위한 창의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라는 것이다. 저자의 미래를 조망하는 예리한 통찰력에 절로 감탄하였다.

건설산업은 인류에게 필요한 생활환경을 제공하고 국가의 경제발전에도 기여해 온 중요한 산업이다. 그러나 이러한 순기능 이외에 난개발에 따른 자연훼손, 무계획적인 사회기반시설투자로 인한 국고손실 등의 부정적인 사례도 있다. 환경전문가는 건설을 하면 할수록 환경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건설전문가는 강 유역 개발을 통해 자연재해를 근원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미래의 건설은 세워서() 베푸는() 본래를 되새기며 자연과 인간의 치유(healing) 공간을 제공하는 품격 있는 산업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십여년 전에 갑작스럽게 세계적으로 녹색의 물결이 밀려왔다. 우리나라에서도 모든 산업에서 녹색중심의 신성장 동력을 창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였다. 그즈음 출간된 코드 그린 : 뜨겁고 평평하고 붐비는 세계”(저자: Thomas Friedman)는 기후변화와 세계화로 인해 메말라가는 지구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녹색전략을 제시하였다. 그때부터 세계 여러 나라는 저마다 녹색혁명을 구현하기 위해 더욱 분주해졌다. 건설분야에서도 기술개발을 통하여 에너지를 별로 소비하지 않는 친환경건축물을 구현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바로 그린과 블루가 만들어내는 시너지 효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건설산업에 진정한 블루오션이 존재하는지 의문이다. 한때 우리나라 해외건설수주가 EPC (Engineering Procurement & Construction) 중심의 플랜트 건설에 집중된 적이 있었다. 초기에는 유가상승의 영향으로 중동지역의 산유국에서 내실 있는 프로젝트가 발주되어 좋은 성과를 거두었지만, 국내 건설기업들끼리 과당경쟁을 하면서 스스로 손실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그간 우리나라 건설산업의 생태계를 살펴보면 건설수요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건설회사의 수는 늘어나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처음부터 블루오션에 진입해보지도 못하고 레드오션에서 허우적거리는 많은 기업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에는 주택시장의 재건축 사업이 제한되면서 도시재생, 리모델링, 스마트 시티 등과 같은 새로운 시장이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창출된 블루오션은 수많은 기업들이 함께 뛰어들면서 경쟁체제에 돌입하게 되고 곧바로 레드오션으로 변해버린다.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을 바라보면서 그 해결책은 없는지 고민해 본다. 혹시 레드오션을 블루오션과 접목시키면 어떨까? 레드와 블루가 만나면 어떤 색깔이 될까? 아마도 색채혼합의 원리에 따라 강렬한 원색은 나오지 않겠지만 멋진 색깔이 나올 것 같다. 바로 퍼플(Purple : 보라색)이다. 퍼플은 고귀함을 상징하는 색으로 직관, 통찰, 관용 등을 표현하는데 사용된다.

오래전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보았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The Color Purple”이 생각난다. 영어실력이 부족해서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한 흑인여성의 기구한 인생역정을 통하여 여성의 인권에 대한 성찰의 메시지를 전달해 준 영화로 기억된다. 10여년전 출판된 비열한 시장과 도마뱀의 뇌” (저자 : Terry Burnham)의 책 표지도 보라색이었다. 이 책에서는 냉엄한 자본주의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원시 두뇌를 다스려야하는 현대인들에게 현명한 의사결정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 이듬해 퍼플오션 전략”(저자 : 인현진)이라는 책이 나오면서 퍼플오션에 대한 정의가 새롭게 부각되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는 아이디어도 소중하지만 존재하는 시장에 대한 재인식(rethinking)을 통해 또 다른 시장, 즉 퍼플오션을 창출하는 것도 바람직한 전략이라고 역설한다.

세계 최고의 사모펀드 그룹인 블랙스톤의 창업자 스티븐 슈워츠만 회장은 회사의 성장 비결을 담은 투자의 모험이라는 저서를 통하여 경쟁은 적고 기회는 많은 영역을 선택하여 투자하라고 강조하였다. 블랙스톤은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투자금융의 퍼플오션에서 고객의 신뢰를 얻고 수익을 공유하면서 승승장구하였다. 우리 건설기업도 퍼플오션에서 수많은 참여주체들과 공존하려면 신뢰에 바탕을 둔 협쟁(협력과 경쟁)하는 태도가 요구된다. 최근 건설산업에서는 탄소중립국을 표방하는 정부정책에 부응하여 비재무적 요소인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평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 19의 여파로 경제위기가 예상되는 시점에서 ESG 경영의 담대한 도전을 추구하는 우리 건설산업에 고귀하고 신비로운 퍼플의 향기가 은은하게 퍼져나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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