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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무지와 무책임의 산물, 중대재해처벌법 어떻게 해야 하나 /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이름 관리자 이메일  bbanlee@kfcc.or.kr
작성일 2021-10-29 조회수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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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공허하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경구다. 배우지도 생각하지도 않으면 얻는 게 없을 뿐만 아니라 오만과 독선에 빠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이야말로 배우지도 생각하지도 않아 탄생된 사생아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중대재해처벌법은 법의 핵심적 가치인 보편성과 실효성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문명국가에서는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데다가 재해예방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많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영국 법인과실치사법이 그 제정의 모티브가 되었지만 체계와 내용이 영국법과는 판이하게 다른데다 매우 조잡해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해괴한 내용의 괴물법이 되고 말았다. 알면 알수록 멘붕에 빠지는 식자우환 법이다.

먼저,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법은 영국 산업안전보건법과 달리 안전조치를 위반해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가중처벌하는 결과적 가중범을 이미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영국과는 달리 결과적 가중범으로 처벌하기 위해 별도법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산업안전보건법과의 중복이 필연적인 이유이다.

둘째,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법은 경영책임자 외에 법인을 처벌하는 양벌규정을 이미 두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안전보건법과 유사하게 경영책임자와 법인을 처벌하는 내용으로 돼 있다. 필요하면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하면 될 일을 새 법을 만들어 법체계를 난삽하게 만들었다. 산업안전보건법, 형법(업무상과실치사죄)과 비교해 강하게 처벌할 규범적 근거도 없는데도 처벌수준만 잔뜩 올려놓았다.

산업안전보건법 등 다른 안전관계법과 의무주체·내용에 있어 상충되는 부분이 많다는 점에서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어떤 법을 따라야 할지 전문가도 알 수 없다 보니 수범자 입장에선 아무리 의지가 강하고 노력을 해도 범법자가 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이 법이 법치주의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대목이다.

원청 경영책임자만을 의무주체와 처벌대상으로 하다 보니 하청의 안전에 대한 무관심을 조장하는 심각한 문제를 낳을 것이다. 재해예방이 원청만의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는 건 학계와 업계의 상식임에도, 이 법은 원청 그것도 경영책임자만 엄벌에 처하면 재해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보고 있다. 이 점 역시 선진국에선 찾아볼 수 없는 악법적 요소이다.

다섯째, 징벌적 손해배상에 관대한 국가에서조차 징벌적 손해배상은 형사처벌이 어려운 경우 이에 대신해 부과되는 반면에 이 법은 형사처벌에 추가해 부과된다는 점에서 그 유례가 없다. 중대재해가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잘잘못을 따지지도 않고 교육을 강제하는 것도 외국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반헌법적 발상이다.

이런 태생적 문제 때문에 이 법은 재해예방에 실효성을 확보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아무리 준법의지가 강한 경영책임자조차도 제대로 준수할 수 없다. 중대재해가 발생하기만 하면 해당 기업의 경영책임자는 피의자 신분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준법의지가 있는 수범자에게도 예측가능성이 없고 현실적으로 준수할 수도 없는 법을 가리켜 우리는 악법이라 부른다. 의도가 어떻든 이 법은 악법의 조건에 들어맞는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중대재해처벌법은 한마디로 이념법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을 적대시하지 않으면 탄생할 수 없는 법이다. 이 법안의 발의에 상당한 역할을 한 학자는 국회 토론회에서 기업에 타격을 입히는 것이 법의 제정목적이라고 했다. 문제는 그 학자가 안전에는 문외한이라는 점이다. 안전 문제에 대해서도 진영논리로 접근하는 이분법적 사고의 결과이다. 지금은 민주-반민주라는 일차방정식이 아니라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시대이다. 우리 사회가 이념보다 전문성을 요구한 지 오래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념이라는 낡은 가치에 갇혀 있는 게 안타깝고 씁쓸하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법이 제정되는 것은 이념 이전에 안전법이론과 현장에 대한 무지와 실효성은 안중에도 없는 진정성 부족이 근본적 원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무지하면 진정성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낡은 이념과 생색내기에 집착하기 마련이다.

무슨 배짱으로 이런 막무가내 입법을 했는지 그 무모함에 놀라울 뿐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였던가(더닝 크루거 효과). 과연 이 법의 제정에 앞장선 자들이 그 내용을 제대로 알고 있었을까. 처벌만 강화하면 문제가 쉽게 해결될 수 있을 거라고 단선적으로 생각한 건 아닌가. 엄벌이 곧 정의라는 도그마대로라면, 북한, 중국, 아랍국은 이미 재해예방선진국이 돼 있어야 하고 독일, 일본, 북유럽국은 재해예방후진국이 돼 있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에 앞장선 자들은 법의 실효성이 중요하다는 주장엔 귀를 닫았다. 쟁점에 대해 잘 모르면 신중함이라도 가져야 한다. 새로운 법, 그것도 매우 광범한 규제와 강한 처벌이 수반되는 법을 제정하는 것이 애들 장난인가. 입으론 인권을 강조하면서 자신은 처벌될 일이 없다고 경영책임자 인권은 아랑곳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그야말로 선택적정의이다.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민주주의 산물인 헌법원칙은 한낱 장신구 정도로 취급해도 되는 것인가. 실제 이 법은 명확성 원칙, 과잉금지 원칙, 범죄와 형벌 간의 균형 원칙 등의 헌법원칙을 깡그리 무시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소위 김용균법’)에 앞장선 자들과 마찬가지로 무지와 무책임의 산물인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에 핏대를 세운 자들 역시 안전원리와 법원칙을 뒤틀리게 한 주역으로 역사에 아로새겨질 것이다. 역사의 법정에서 엄벌 선고를 받지 않기 위해선 이제라도 이 법을 폐지하거나 혁신하는 일에 나서는 것으로 속죄해야 한다. 동참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훼방꾼만은 되지 말아야 한다. 지나친 기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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