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시장을 선도하는 대한민국 대표건설사들의
전략기지가 되겠습니다.

KFCC 자료실

Global Market Explorer, Global Base Camp

KFCC 칼럼

Home > KFCC 자료실

제목 치명적 자만 / 이상호 법무법인 율촌 고문
이름 관리자 이메일  bbanlee@kfcc.or.kr
작성일 2023-04-28 조회수 1339
파일첨부  

평소 열렬한 시장경제 신봉자들도 경제위기가 닥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정부개입을 요청한다.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그랬고, 2020년의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위기 때도 그랬다. 개발도상국만이 아니라 시장경제의 본산이라는 미국과 유럽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차이가 있다면, 정부개입에 따른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크냐 적냐는 정도인 것 같다. 예컨대 미국의 경우, 최근 중소은행 위기상황에서 신속하게 정부가 대처한 덕택에 추가적인 위기의 전염은 막았지만, 지속적인 정부개입이 장기적으로 좀비기업을 양산하고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과 생산성 하락을 초래함으로써 경제성장을 저해하고 국민의 삶의 질도 떨어뜨리게 될 것이라는 경고도 상당하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정부개입의 위험성이나 중장기적인 해악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미약하다.

우리 국민들의
정부개입 중독증은 중증(重症) 수준이다. 오랜 왕조시대와 식민지배를 겪고 난 뒤, 근대국가로 탈바꿈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21세기에 들어와서도 문재인 정부는 내 삶을 책임지는 정부를 공식적인 국정목표로 제시했다. 지금도 우리는 경제위기만이 아니라 사고가 나도 정부는 뭐하냐, 홍수가 나도 정부는 뭐하냐, 가뭄이 들어도 정부는 뭐하냐... 문제만 생기면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 주기를 바란다. 이같은 사고의 근저에 깔린 묵시적인 전제는 정부의 전지전능성일 것이다. 정부는 권력도 있고, 능력도 있으니 내 삶을 책임져야 한다는 식이다. 정부개입 중독증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관치경제에 대한 향수를 가진 보수우파는 물론이고, 노무현·문재인 대통령 시절의 진보좌파도 마찬가지다. 다만, 사상적·철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그나마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우파는 작은 정부를 선호하지만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좌파는 큰 정부를 주창해왔다는 차이가 있다.

필자는 전형적인
586세대의 일원이다. 정치학과를 나온 탓도 있겠지만, 대학 동기들 중에는 골수 운동권이 대단히 많았다. 당연히 대학공부보다는 좌파이론가들의 책을 더 많이 읽었다. 북한이나 중국, 소련과 같은 공산국가들의 참상을 전해 듣더라도 자본주의나 시장경제의 장점에 대한 인식보다 불평등에 대한 사회주의적 비난에 훨씬 더 공감하고 동조했다. 1990년대 들어 구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들이 몰락하면서 좌파 사회주의자들도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때도 사회주의 이상은 숭고하고 이론도 좋지만, 여러 가지 구조적 한계로 인해 현실적으로 작동하기 어려웠다. 비록 효율성은 자본주의보다 못하지만, 도덕적으로는 사회주의가 훨씬 더 우월하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하이에크의 마지막 저술인
<치명적 자만(The Fatal Conceit), 1988>은 이같은 인식도 잘못된 것임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하이에크는 잘못된 시장경제 질서를 정부가 나서서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만이고, 그 결과는 구 소련과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들이 보여주듯이 치명적이라고 지적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사회주의 이론은 원천적으로 잘못된 근거와 토대 위에 세워진 사이비 과학이론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대학시절 필자에게 하이에크의 주장은 극단적인 보수우파 사상으로 보여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다
. 당시에는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창하는 케인즈 경제학이야말로 진짜 경제학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학 졸업 후 오랫동안 경제와 건설산업 관련한 연구 및 실무를 경험해 본 뒤, 지금은 하이에크의 주장에 대부분 동의한다. 하이에크가 지적했듯이, 정부는 만능이 아니다. 정부가 항상 도덕적인 것도 아니다. 정부의 개입과 규제로 경제성장과 번영을 달성할 수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필자가 극단적인 자유주의 사상가들이나 무정부주의자들처럼 정부 개입이 전혀 필요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정부의 일시적인 개입이 필요한 때가 많다. 시장의 실패를 방지하기 위한 정부 개입도 필요하다. 다만, 어떤 명분이 되었건 정부 개입은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의 틀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정부 개입은 문재인 정부와 코로나 팬데믹 등을 거치면서 갈수록 그 폭이 넓어지고 강도는 강화되고 있다. 그렇게 된 데에는 건설업계 탓도 크다. 부동산시장이 대표적이다. 지금도 부동산PF 부실화, 미분양 증가, 전세 사기 급증 등 사안이 발생할 때 마다 정부 개입을 강화해 달라는 요구가 빗발친다. 집값이 올라도 정부 개입이, 내려도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가 어떤 일이건 잘 할 수 있다고 하는 생각은 자만이다. 종종 자만의 결과는 치명적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그런 예라고 생각한다. 법이 발효된 지 1년이 지났건만 건설현장의 중대재해는 줄어들지 않았고, 경영책임자에 대한 과잉처벌로 건설산업만 위축될 뿐이다


명시적이건 묵시적이건, 정부의 도덕성과 전지전능성을 전제로 한 모든 이론은 거짓이다. 전제 자체가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과도한 규제와 정부 개입 때문에 건설산업이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데 위기를 빌미로, 혹은 안전이나 환경 같은 아름다운 명분을 빌미로 정부 개입을 더 강화할수록 건설산업은 더 낙후되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우리 건설산업도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정부개입 중독증의 장기화를 탈피해야 한다.

이전글  "제2의 한강의 기적"을 건설산업이 주도하길 바란다 / 김형렬 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 이사장
다음글  한국건설의 위기를 반전시킬 기회 / 이복남 서울대학교 건설환경종합연구소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