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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앙꼬 없는 찐빵”이 된 위험성평가 /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이름 관리자 이메일  bbanlee@kfcc.or.kr
작성일 2023-06-30 조회수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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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위험성평가 지침(고시) 개정안이 확정 발표되었다.(2023.5.22) 가뜩이나 문제 많은 위험성평가의 시계를 되레 거꾸로 돌려놓은 개악이라는 비판이 자자하다

위험성평가는 고용부가 강조하는 것처럼 안전관리의 초석에 해당하는 매우 중요한 제도이다
. 그럼에도 제도 변경을 하면서 고용부는 제도의 원리, 개념에 대해 기초적 조사와 학습조차 하지 않았다. 심각한 건 다양한 경로로 제기된 문제점을 무시하거나 외면했다는 점이다. 이번 고시 개정 내용과 과정을 보면서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더닝-크루거 효과를 떠올리는 건 필자만일까

지난 해
11월 발표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에 위험성평가 기준을 낮추겠다는 내용을 불쑥 반영한 것이 화근이긴 하다. 그렇더라도 위험성평가를 폐지한거나 다름없는 내용을 밀어붙이는 것이 용인될 수는 없다. 실적을 포장하기 위해 근로자의 안전은 아랑곳하지 않는 공무원들을 보면서 정부는 바뀌었지만 공무원은 바뀌지 않는다는 장탄식이 절로 나온다. 사명감은 찾아볼 수 없고 영혼 없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위험성 추정
(가능성과 중대성의 조합)이 위험성평가의 필수적 절차라는 사실도 모른 채 위험성평가 제도가 개편되었다. 제도개선 TF를 사이비 전문가로 채운 사실만 보더라도, 애당초 제도개선에 대한 진정성은 없었고 일련의 행정절차는 그저 구색에 지나지 않았다.

위험성평가 실시율이 저조한 이유가 위험성 추정의 복잡성 때문이라고 분석한 것은 정부의 무능과 직무태만을 덮으려는 무책임한 진단이다
. 위험성 추정을 내실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도 모자랄 판에 선진국에선 일반화되어 있는 위험성 추정을 어렵다고 지레 포기하면서 위험성평가를 점검과 같은 안전활동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처사이다.

고용부는 개악된 내용을 가리기 위해 설명자료에서 외국사례의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 용어의 표현이 다를 뿐 위험성 추정을 누락한 채 위험성평가를 운영하는 선진국과 국제기준은 한군데도 없는 것이 명백한 사실인데도 그렇지 않은 국가가 적지 않다고 견강부회하고 있다. 분명한 건 위험성 추정이 빠진 위험성평가는 앙꼬 없는 찐빵과 같아 더 이상 위험성평가라고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위험성평가의 대표적 방법이라고 제시된 방법들이 위험성평가의 일부 절차는 커버하지만 위험성평가 절차 전체를 커버하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이다
. 이를 위험성평가 방법이라고 생각한 발상부터가 난센스이다. 각 방법에서 커버되지 않는 다른 절차는 매뉴얼에서 추가하겠다는 건 꼼수이다. 애당초 방법, 용어가 잘못 사용됐다는 것을 시인하고 바로잡아야 이를 둘러싼 혼란을 막을 수 있다.

개정 고시에서 강화됐다고 하는 근로자 참여는 부작용이 적지 않을 것이다
. 형식적 사인으로 도배될 것은 불을 보듯 훤하다. 참여 여건을 조성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참여 자체만 강조해서는 참여가 형해화되기 십상이다. 나아가 근로자 참여만 강조하는 건 관리자 책임이 희석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유해위험요인 파악의 경우 순회점검
, 청취조사와 같은 하나의 방법만으로 해도 무방하고 위험성 추정도 사실상 빠졌는데 근로자는 무엇에 참여를 할 수 있을까. 위험성평가의 핵심절차인 유해위험요인 파악과 위험성 추정에 근로자가 제대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없는 상태에서의 근로자 참여는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담당공무원들이 안전원리와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더욱 심각한 건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 위험성평가의 본질은 모른 채 근로자 참여만 강조하다 보니, 건설공사(작업) 개시 전에 위험성평가를 통해 위험성을 저감한다는 위험성평가 원칙을 훼손하고 건설공사(유지보수공사 포함) 개시 후에 최초 위험성평가를 하라는 황당한 규정을 넣었다. 버스 떠난 뒤에 손드는 격이다. 그 무지가 놀라울 뿐이다. 위험성평가를 망치려고 작정이라도 한 것 같다.

건설현장과 같은 특수한 영역은 이번 제도 개편 시 거의 고려되지 않았다
. 여러 업종 중 건설현장의 위험성평가가 가장 혼란스러운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도 이를 바로잡기는커녕 실시주체, 실시방법·시기 등을 더 꼬이게 만들었다. 위험성평가에서 발주자, 하청의 역할은 염두에 두지 않고 원청의 역할만을 생각한 것 같다. 건설현장의 안전관리체계, 작업메커니즘 등에 대해 문외한이다 보니, 건설현장 위험성평가의 특수성, 고려사항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는 건 당연해 보인다.

이번 개정 고시는 내용의 허술함 때문에 산업재해 감소가 아닌 증가에 기여하는 쪽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 위험성평가 제도가 마치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돌진하고 있는 것 같다. 보여주기에만 관심이 있고 내실화에는 관심이 없는 잘못된 정책을 지켜보자니 전문가의 한 사람으로서 답답할 따름이다. 개선하지는 못할망정 개악은 하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고용부는 잘못된 지식을 경계하라. 무지보다 더 위험하다는 버나드 쇼의 경구를 되새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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