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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손가락과 머리를 균형 있게 쓰는 삶 / 김영희 중앙일보 국제문제 대기자
이름 관리자 이메일  bbanlee@kfcc.or.kr
작성일 2013-11-04 조회수 5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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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철학자 이마뉴엘 칸트(1724-1804)가 쓴 “순수이성비판”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내용 없는 사유는 공허하고, 사유 없는 내용은 맹목적이다“

(Gedanken ohne Inhalt sind leer. Inhalt ohne Gedanken is blind.) 

참으로 어려운 철학적인 명제로 들리는 말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바쁜 일상에 쫓기면서 사는 21세기의 우리들, 무슨 일이든지 속전속결로 보고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우리들이 잠시 귀담아 들을만한 가르침이라고 생각된다. 

어려운 철학적 해석은 접고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대강 이런 뜻이다. 실체가 없이 생각(사고)만 하고 이론을 세우고 추상적인 결론을 내려 봐야 손에 잡히는 것 하나 없이 공허할 뿐이다. 질서는 정연한데 내용이 없다. 반대로 거기에 대해서 생각은 하지 않고 내용만 강조하면 맹목으로 흐르기 쉽다. 내용은 있는데 거기에 체계를 세워주고 의미를 부여하고 질서를 잡아주는 사고가 없으면 혼란이 온다.  
박근혜 대통령은 칸트의 말을 번안하여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말을 즐겨 쓴다. 그래서 개성공단 재개를 논의하는 남북회담에 북쪽에서 어느 수준의 인사가 나올 것이며 우리는 누구를 보내는 것이 그에게 적당한 카운터파트가 될 것인가가 문제가 되어 회담이 막판에 유산되는 사단이 벌어지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양쪽 대표의 직급은 바로 격(格)의 문제였다. 양쪽 협상대표의 격이라고 하는 형식이 회담 내용을 좌우한다는 것이 박근혜 대통령의 생각이었던 같다.

칸트가 하고 싶었던 말은 형식과 내용의 균형, 사유(생각)과 내용의 균형이었다. 우리는 매일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복잡한 현상을 만난다. 복잡한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거기 맞게 대응을 하려면 인간이 나면서부터 갖추고 있다고 생각되는 이성(Reason)의 힘을 빌어 현상의 정체가 무엇인지 가닥을 잡아주어야 한다. 특히 요즘 우리의 생활환경을 압도적으로 좌우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는 사고하지 않으면 쏟아지는 정보의 의미, 현상 뒤의 진실, 옥석을 가릴 수가 없어 생활에 불편과 불이익을 겪는다.

우리는 지금 “검색만 있고 사색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 검색은 손가락을 움직이는 스마트폰과 노트북 컴퓨터의 사용을 상징한다.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식당에서, 직장에서, 집에서, 심지어는 침대에서 스마트폰과 노트북과 태블릿 PC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아침에 하루를 설계할 시간, 저녁에 하루를 돌아보고 정리할 시간이 없다. 옆 사람과 대화할 시간도 없다. 그런 생할은 일상을 따라 표류하는 생활이 되기 싶다. 그렇게 되면 우리에게 온갖 편의를 제공하고 미디어 환경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 와 사회 전체에 역동성을 부여한 SNS와 컴퓨터 같은 최첨단 정보통신기술의 산물 때문에 우리의 시야가 좁아들고 눈앞에 일어나는 현상에 맹목적으로 좌우될 위험이 크다. 칸트의 말을 확대해석하면 이런 경구가 된다.

SNS를 외면하고는 오늘을 살아가기가 불편하다. 그렇다고 스마트폰에만 너무 매달리고 SNS를 맹신하면 만사가 급해지고 끝없이 허둥대는 생활을 하게 된다. 이런 현상에 대한 반작용으로 슬슬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 슬로(Slow) 생활이다. 생각도 하고 옆 사람과 이야기도 하면서 내 페이스 대로 살자는 생활태도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1596-1650)는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존재 한다”(Cogito, ergo sum)이라고까지 말했다. 생각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는 있다. 그러나 생각하지 않는 삶은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내용들로만 가득 찬 혼돈스럽고 단순하고 맹목적인 삶일 것이다. 우리는 SNS 사용량을 조절해서라도 칸트의 충고에 따라 생각을 동반하는 삶(내용), 살아 숨 쉬는 삶이 있는 사고를 하는 지혜를 터득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손가락과 머리를 균형있게 쓰는 삶이 참삶이다.

사고의 자료와 바탕이 되는 것이 독서다. 활자 매체를 멀리하는 인터넷 시대의 생활에 안주하면 책을 멀리하게 되고, 책을 멀리 해서는 생산적인 사고를 할 수가 없다. 특히 고전은 우리의 사고를 숙성시키는데 가장 효과적이다. 문.사.철 가릴 것 없이 고전급에 드는 책에는 우리의 하루하루의 생활에 길잡이가 되어 줄 지혜가 가득 하다. 요즘같이 생존경쟁이 치열한 시대, 감각적인 일상에 묻히기 쉬운 시대에는 독서로 호흡을 가다듬고 눈앞에 전개되는 현상의 의미를 새겨보는 여유가 필요하다. 멀리 둘러가는 것 같아도 그 것이 지름길일 수 있다. “독자(讀者) 생존”이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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